책을 못 읽어서가 아니라 안 읽어서였다. 책장에 사놓고 안 읽은 책이 서른 권도 넘는데, 정작 그 달에 다 읽은 책은 한 권도 없을 때가 많았다. 이상한 건 책을 안 좋아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서점 앱만 켜면 30분은 그냥 지나가고, 장바구니는 늘 꽉 차 있었다.

산 책은 쌓이고 읽은 책은 안 늘고

매달 카드값 내역을 보면 서점 결제가 꼭 있었다. 근데 그 책들이 실제로 읽히는 건 아니었다. 사는 순간에는 분명 읽고 싶어서 산 건데, 택배가 도착하고 책장에 꽂히고 나면 그걸로 끝이었다. 그러다 또 다른 책이 눈에 띄면 그걸 새로 산다. 이 패턴이 몇 달째 반복되고 있었다.

책을 사는 것과 읽는 것은 완전히 다른 행동이었다

한참 지나서야 깨달은 게 있다. 책을 사는 행위 자체가 이미 어떤 만족감을 준다는 것. "이 책 읽어야지"라고 마음먹는 순간, 뇌는 이미 그 일을 반쯤 해낸 것처럼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결제 버튼을 누르는 순간 성취감 비슷한 걸 느끼고, 정작 책을 펼쳐서 읽는 건 전혀 다른, 훨씬 귀찮은 행동으로 남는다. 사는 것과 읽는 것을 같은 취미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셈이다.

생각해보면 헬스장 등록하고 안 가는 것도, 요리책 사놓고 배달만 시키는 것도 비슷한 이야기다. 시작하는 결제 순간과 실제로 그 행동을 반복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인데, 결제할 때는 꼭 둘을 같은 걸로 착각하게 된다.

장바구니에 담아두는 걸로 바꿔봤다

그래서 규칙을 하나 만들었다.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바로 사지 않고 일단 장바구니나 위시리스트에 담아만 둔다.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다 끝냈을 때만 그중 한 권을 산다. 처음엔 답답했다. 사고 싶은 책이 몇 권씩 쌓여도 못 사니까. 근데 신기하게도 이렇게 하니까 지금 읽는 책에 더 집중하게 됐다. 다음 책이 정해져 있으니 지금 책을 빨리 끝내고 싶어졌다.

그래도 가끔 사고 싶으면 어떻게 하냐면

물론 규칙을 완벽하게 지킨 건 아니다. 정말 놓치기 아까운 책이 있으면 산다. 대신 그럴 땐 지금 읽고 있는 책을 잠깐 옆에 밀어두는 게 아니라, 새로 산 책을 장바구니에서 바로 꺼내지 않고 책장 앞쪽 눈에 잘 띄는 자리에만 세워둔다. 사자마자 바로 읽기 시작하면 지금 읽던 책을 놓치기 쉬워서, 지금 책을 끝내야 저 책을 시작할 수 있다는 걸 계속 눈으로 확인하게 만드는 거다.

지금은 책장보다 위시리스트가 더 길다

여전히 사고 싶은 책은 계속 늘어난다. 다만 이제 그 목록은 책장이 아니라 위시리스트에 쌓인다. 그리고 확실히 달라진 게 있다면, 위시리스트에 있는 책은 실제로 다음에 읽을 책이라는 거다. 예전처럼 사놓고 책장에서 썩는 책이 아니라, 순서를 기다리는 책이 됐다는 차이가 크다.

책 사기 전에 딱 하나만 물어보는 것

지금 책 사는 걸 못 참겠다면, 딱 하나만 스스로에게 물어보길 권한다. "지금 읽고 있는 책, 다 읽었나?" 아니라면 일단 장바구니에만 담아두자. 그 책은 도망가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읽던 책을 끝냈을 때 그 책을 펼치는 게 훨씬 더 기대되는 순간이 될 거다.

마지막 업데이트: 2026-08-14 0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