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 하나를 통째로 덮는 지붕 아래에 기둥이 하나도 없다면, 그 무게는 결국 어디로 흘러가는가. 관중석 위로 수백 톤에 달하는 철골과 막재의 하중은 허공에 떠 있을 수 없고, 반드시 땅으로 내려가는 경로를 거친다. 그 경로를 설계하는 방식이 트러스, 케이블, 스페이스프레임이며, 세 방식은 같은 문제―장스팬(long span, 중간 지지 없이 넓은 간격을 건너지르는 구조 경간)을 어떻게 얇고 가벼운 부재로 버티게 하는가―에 서로 다른 답을 낸다.
사실 이 지붕 구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별거 아니었다. 예전에 축구 경기를 보러 갔다가 관중석에 앉아 위를 올려다보는데, 저 넓은 지붕을 떠받치는 기둥이 하나도 안 보여서 순간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나중에 새로 지어진 다른 경기장 뉴스를 보다가 ‘세계 최대 자유경간 돔’이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저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 궁금해서 이것저것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트러스니 케이블 구조니 하는 용어들이 나오면서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힘의 원리가 숨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내가 자료를 찾아보며 이해한 내용을 하나씩 정리해보려 한다.
하중을 분산시키는 세 가지 원리
일반 보(beam) 구조는 하중이 걸리면 부재 단면에 휨모멘트가 발생하고, 이를 버티려면 단면이 두꺼워져야 한다. 스팬이 두 배로 늘어나면 필요한 단면 강성은 급격히 커지고, 그만큼 자중도 늘어난다. 장스팬 구조는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 휨 대신 축방향력(인장 또는 압축)으로 하중을 처리하도록 부재를 배치한다.
트러스(truss)는 직선 부재를 삼각형 단위로 연결한 구조체다. 삼각형은 세 변의 길이가 고정되면 형태가 변하지 않는 유일한 다각형이므로, 트러스는 부재가 휘지 않고 인장 또는 압축만 받도록 힘을 분해한다. 같은 재료량으로 보보다 훨씬 큰 스팬을 버틸 수 있는 이유다.
처음 이 설명을 봤을 때는 삼각형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잘 와닿지 않았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가 흔히 보는 전선 철탑이나 공사장 크레인의 붐대도 다 삼각형 격자로 짜여 있다는 게 떠올랐다. 그제야 트러스 구조가 왜 그렇게 널리 쓰이는지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주변 구조물들도 사실은 다 이런 원리로 서 있었다는 게 새삼 흥미로웠다.
케이블(cable) 구조는 인장력만 받는 강선이나 강봉으로 지붕을 매달거나 잡아당긴다. 케이블은 압축이나 휨에는 저항할 수 없지만 인장에는 강재 중 가장 효율적인 형태로 저항하므로, 지붕 하중을 마스트(지지 기둥)로 끌어가는 데 최소 단면으로 최대 스팬을 확보한다.
스페이스프레임(space frame, 입체 트러스)은 트러스를 평면이 아닌 3차원 격자로 확장한 것이다. 하중이 한 방향의 트러스 라인이 아니라 여러 방향의 부재로 동시에 분산되므로, 특정 부재에 하중이 집중되지 않고 격자 전체가 응력을 나눠 받는다. 불규칙한 평면이나 곡면 지붕에도 적용하기 쉬운 것이 특징이다.
하중이 지반까지 전달되는 경로
지붕 위에 쌓이는 자중, 적설하중, 풍하중은 다음 순서로 흘러간다.
지붕 마감재(막재·패널) → 2차 부재(퍼린) → 주 구조체(트러스/케이블/스페이스프레임) → 마스트 또는 기둥 → 기초 → 지반
트러스 지붕에서는 지붕 마감재의 하중이 격자형 상현재·하현재·복부재로 전달되고, 각 부재는 인장 또는 압축력으로 변환된 힘을 양 끝 지지점(기둥이나 벽체)으로 넘긴다. 케이블 지붕에서는 막재나 경량 패널의 하중이 케이블의 인장력으로 바뀌고, 케이블은 이 힘을 마스트 상단으로 모은 뒤 마스트가 압축력으로 받아 기초까지 내려보낸다. 마스트가 케이블 인장력의 수평 성분을 감당하지 못하면 전도(넘어짐)가 발생하므로, 마스트를 역방향으로 당기는 백스테이 케이블이나 앵커가 함께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스페이스프레임은 격자 노드마다 여러 부재가 만나 하중을 사방으로 재분배하며, 최종적으로 외곽 링보(ring beam)나 다수의 지지점으로 힘을 모은다.
이 하중 전달 경로를 도식으로 정리해놓고 보니, 마스트가 왜 그렇게 굵고 튼튼하게 만들어지는지도 이해가 됐다. 예전에는 그냥 지붕을 받치는 기둥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실은 케이블의 인장력을 압축력으로 바꿔주는 일종의 변환점 역할을 한다는 걸 알고 나니 같은 구조물이라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실제 수치로 본 장스팬 지붕
싱가포르 내셔널 스타디움(National Stadium, Singapore Sports Hub)의 고정 지붕 돔은 스팬 310m, 정점 높이(라이즈) 85m로, 경기장을 덮는 돔형 지붕 가운데 세계 최대 자유경간(free-spanning) 기록으로 보고되어 있다. 이 돔은 원형강관(circular hollow section) 부재로 구성된 아치형 강재 트러스로 이루어지며, 트러스 단면 깊이는 돔 중심부에서 5m, 기초부에서 2.5m로 줄어든다. 트러스 아치는 여러 방향으로 교차 배치되어 하나의 일체형 브레이스드 돔(braced dome)을 이루고, 그 하단은 포스트텐션 콘크리트 링보가 받친다. 강재 총중량은 약 8,000톤, 단위면적당 약 120kg/㎡로, 이는 유사 규모 경기장 지붕보다 약 3분의 1 가벼운 수준으로 보고되었다. 설계는 Arup(구조), Arup Associates(건축)가 맡았고 2014년 완공되었으며, 좌석수는 55,000석이다. 지붕 일부(약 19,500㎡)는 ETFE 소재의 개폐식 패널로, 20분 안에 개폐가 가능하다.
이 수치들을 찾아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놀랐던 부분은 강재 단위중량이 120kg/㎡밖에 안 된다는 대목이었다. 막연히 “지붕이 크면 당연히 엄청나게 무거운 철골 덩어리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같은 규모의 다른 경기장 지붕보다 오히려 3분의 1이나 가볍다는 자료를 보고 내가 갖고 있던 선입견이 얼마나 근거 없는 것이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국내 사례로는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캐노피 지붕이 있다. 트러스 부재로 짜인 입체 네트워크에 PTFE 코팅 유리섬유 막재를 씌운 인장막 구조이며, 16개의 마스트에 매달려 있다. 캐노피가 덮는 면적은 약 40,950㎡로 알려져 있다. 또 다른 국내 사례인 수원월드컵경기장(빅버드)은 규모에 비해 작은 기둥으로 지붕을 지지하는데, 케이블을 V자 형태로 당겨 지붕을 매다는 방식을 쓴다. 이는 프랑스 스타드 드 프랑스와 같은 계열의 설계 방식으로 알려져 있으며, 2001년 5월 준공되었다.
트러스 vs 케이블 구조 vs 스페이스프레임
| 구분 | 힘의 처리 방식 | 적합한 스팬·형태 | 주요 제약 |
|---|---|---|---|
| 트러스 | 부재를 인장·압축으로 분해(삼각형 원리) | 직선형 대공간, 중간 규모~대형 스팬 | 스팬이 커질수록 부재 단면·자중 증가 |
| 케이블 구조 | 강선의 인장력만으로 하중 저항 | 초대형 스팬, 곡면·경사 지붕 | 마스트 전도 방지용 백스테이·앵커 필요, 인장력 관리가 핵심 |
| 스페이스프레임 | 3차원 격자 노드로 하중을 다방향 분산 | 불규칙 평면, 곡면 돔, 중대형 스팬 | 노드 접합부 정밀도 요구, 부재·접합점 수가 많아 시공 관리 부담 |
흔한 오해
이 글을 준비하면서 돌이켜보니, 나도 처음엔 “지붕이 넓으면 무조건 두껍고 무거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 중 하나였다. 이건 사실 보(beam) 구조의 직관을 장스팬 구조에 그대로 적용한 오해다. 실제로는 부재를 휨이 아니라 인장·압축으로만 쓰도록 배치하면, 스팬이 늘어나도 부재 두께가 비례해서 두꺼워지지 않는다. 싱가포르 내셔널 스타디움의 강재 단위중량이 120kg/㎡에 그치는 것이 이를 보여주는 근거다. 반대로 “케이블 구조는 기둥이 필요 없다”는 것도 오해다. 케이블은 인장력만 처리할 뿐 그 힘을 최종적으로 압축력으로 바꿔 지반까지 내려보낼 마스트나 기둥,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기초·앵커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렇게 하나씩 뜯어보니, 눈에 보이는 기둥 개수만으로 구조의 안전성이나 효율성을 판단할 수 없다는 걸 새삼 느꼈다. 처음 관중석에서 지붕을 올려다보며 느꼈던 막연한 신기함이, 자료를 찾아보고 나서는 구체적인 이해로 바뀐 셈이다. 다음에 경기장이나 전시장처럼 넓은 공간에 가게 되면, 예전처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지붕이 어떤 방식으로 하중을 흘려보내고 있는지 한 번 더 올려다보게 될 것 같다.
핵심 정리
- 장스팬 지붕은 부재를 휨이 아닌 인장·압축으로 쓰게 만들어 자중 대비 스팬을 늘리는 원리를 공유한다.
- 트러스는 삼각형 형태의 기하학적 안정성으로, 케이블은 강재의 인장 효율로, 스페이스프레임은 3차원 격자의 다방향 분산으로 각각 문제를 푼다.
- 지붕 하중은 마감재 → 2차 부재 → 주 구조체 → 마스트/기둥 → 기초 → 지반의 경로를 거치며, 케이블 구조는 마스트 전도 방지 장치가 필수다.
- 싱가포르 내셔널 스타디움(스팬 310m, 강재 120kg/㎡)은 아치형 트러스와 콘크리트 링보를 결합한 세계 최대급 자유경간 돔 사례다.
- 지붕이 넓다고 무조건 무거워지는 것이 아니라, 부재 배치 방식이 하중 대비 무게를 좌우한다.
참고자료
- Designing the world’s largest dome: the National Stadium roof of Singapore Sports Hub, IES Journal Part A: Civil & Structural Engineering (Taylor & Francis) — https://www.tandfonline.com/doi/abs/10.1080/19373260.2014.911485
- World’s largest dome roof taking shape in Singapore, New Atlas — https://newatlas.com/worlds-largest-dome-roof-singapore-stadium/24779/
- Singapore national stadium boasts world’s largest free-spanning dome, Dezeen — https://www.dezeen.com/2014/10/17/singapore-sports-hub-national-stadium-worlds-largest-free-spanning-dome/
- 서울월드컵경기장, 건축도시정책정보센터(AURUM) — http://www.aurum.re.kr/Bits/BuildingDoc.aspx?num=212
- 서울월드컵경기장 지붕구조물 설계와 시공, KISTI 학술정보 — https://scienceon.kisti.re.kr/srch/selectPORSrchArticle.do?cn=JAKO200152941876506
- 수원월드컵경기장, 위키백과 — https://ko.wikipedia.org/wiki/수원월드컵경기장
- KDS 14 30 00 강구조 설계기준(허용응력설계법), 국가건설기준센터(KCSC) — https://www.kcsc.re.kr/standardCode/viewer/KDS%2014%2030%2010:2024-05-03
- KDS 14 31 05 강구조설계 일반사항(하중저항계수설계법), 국가건설기준센터(KCSC) — https://www.kcsc.re.kr/standardCode/viewer/KDS%2014%2031%2005:2024-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