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상을 간소화하자는 이야기는 몇 년째 나오고 있다. 성균관에서도 격식보다 정성이 중요하다는 취지로 표준 간소화 지침을 내놓은 적이 있고, 실제로 많은 집에서 상차림을 예전보다 줄이고 있다. 문제는 막상 우리 집 상에서 무엇을 빼도 되는지 감이 안 잡힌다는 점이다. 어디까지가 전통이고 어디부터가 관행인지 구분이 안 되니 결국 예년처럼 다 차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전 종류부터 줄이기

차례 준비에서 시간과 손이 가장 많이 드는 게 전이다. 생선전, 동그랑땡, 호박전, 고기전까지 종류별로 부치다 보면 하루가 다 간다. 전은 원래 차례상의 필수 요소가 아니라 후대에 풍성함을 더하려고 자리잡은 음식에 가깝다는 설명이 많다. 전 종류를 두세 가지로 줄이거나 한 가지로 통일해도 형식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기름 냄새와 뒷정리 부담을 생각하면 이 부분부터 줄이는 게 체감 효과가 가장 크다. 실제로 전 대신 나물이나 삼색 채소로 상을 채우는 집도 늘고 있다.

과일과 나물 가짓수 정리

홍동백서니 조율이시니 하는 배열 규칙에 얽매여 과일을 종류별로 다 채우려는 집이 많은데, 이런 배열 규칙은 지역과 집안마다 원래 달랐다. 사과, 배, 감 정도로 대표 과일만 놓아도 무방하다고 보는 경우가 늘고 있다. 나물도 고사리, 도라지, 시금치를 다 무치기보다 두 가지 정도로 줄이고 신선한 재료로 정성껏 준비하는 쪽에 무게를 두는 집이 많아졌다. 떡도 종류를 다 갖추기보다 송편 한 가지로 정리하는 집이 흔해졌고, 탕 종류 역시 육탕, 어탕, 소탕을 다 준비하기보다 한두 가지로 줄이는 추세다.

형식보다 참석자 합의가 먼저

간소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실 음식 가짓수가 아니라 집안 어른들과의 합의다. 아무리 요즘 트렌드가 간소화라고 해도 준비하는 사람 혼자 결정하고 줄이면 당일 갈등의 씨앗이 된다. 명절 전에 미리 전화나 가족 대화로 올해는 이런 식으로 줄여보자고 이야기를 꺼내는 게 순서상 먼저다. 특히 큰집이나 종가라면 형식을 바꾸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으니 한 번에 확 줄이기보다 해마다 조금씩 조정하는 방식이 마찰을 줄인다. 올해는 전만 줄여보고 내년엔 과일 가짓수를 조정하는 식으로 단계를 나누는 것도 방법이다.

상차림 대신 의미 챙기기

간소화의 취지는 결국 조상에 대한 마음은 유지하되 준비 과정에서 오는 소모를 줄이자는 것이다. 상에 올리는 음식 수가 줄어도 절하는 순서나 인사말, 가족이 모여 이야기 나누는 시간 자체는 그대로 유지하는 집이 많다. 오히려 음식 준비에 쏟던 시간을 가족들과 이야기하는 데 쓰면서 명절 본래의 의미에 더 집중하게 됐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나온다. 준비하는 사람의 피로가 줄어드니 오히려 명절 당일 표정이 편해지고, 그게 가족 모두에게 더 좋은 분위기로 이어진다는 경험담도 많다. 형식을 줄이는 게 정성을 줄이는 것과 같지 않다는 인식이 자리잡으면서, 차례상 간소화는 이제 특별한 결정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선택지가 되어가고 있다.

시장 반찬과 완제품 활용

요즘은 대형마트나 전통시장에서 차례용 전, 나물, 산적을 세트로 판매하는 곳이 많아졌다. 직접 만드는 것과 사서 채우는 것을 반반씩 섞는 집도 흔하다. 완제품을 쓴다고 정성이 없다고 보기보다는, 그렇게 아낀 시간을 상 차리는 정성이나 가족과의 대화에 쓴다면 오히려 더 알찬 명절이 된다는 시각도 늘고 있다. 처음 완제품을 쓸 땐 어른들 눈치가 보일 수 있지만, 맛과 정갈함만 갖춰져 있다면 큰 반발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명절 며칠 전부터 미리 주문해두면 당일 배송 지연 걱정 없이 여유 있게 상을 차릴 수 있다는 점도 완제품 활용의 장점으로 꼽힌다.

지방과 축문도 간소화 대상

지방을 한자로 정성껏 써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명절마다 스트레스를 받는 집도 있는데, 최근엔 한글로 지방을 쓰거나 미리 인쇄해둔 지방을 사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축문 역시 집안에 따라 짧게 줄이거나 생략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형식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매년 반복되는 부담이 크다면 한글 지방이나 간단한 인사말로 대체하는 것도 충분히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마지막 업데이트: 2026-08-27 0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