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 9.0급 지진이 서울에 닥친다고 가정하자. 123층, 555m 높이의 롯데월드타워는 이 지진에서 전혀 흔들리지 않아야 안전한가, 아니면 흔들려야 안전한가. 답은 후자다. 이 건물은 강진 시 최상층부가 좌우로 2m에서 6m까지 흔들리도록 설계되었다. 흔들림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흔들림의 양과 방식을 제어하는 것이 목표라는 뜻이다. “지진에 강한 건물 = 흔들리지 않는 건물”이라는 통념은 구조공학적으로 정확하지 않다. 오히려 전혀 흔들리지 않으려는 구조물은 지진 에너지를 고스란히 부재의 응력으로 떠안다가 취성 파괴에 이를 위험이 크다.

사실 이 주제를 파고들게 된 건 별다른 계기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잠실 쪽을 지나갈 때마다 롯데월드타워를 올려다보면서 “저렇게 높은 건물이 바람 불 때 정말 안 흔들릴까”라는 막연한 궁금증이 있었는데, 지진 관련 뉴스를 보다가 문득 그 궁금증이 다시 떠올랐다.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니 애초에 전제부터가 잘못돼 있었다. 안 흔들리는 게 목표가 아니라 흔들리는 걸 어떻게 통제하느냐가 핵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튼튼한 건물 = 꿈쩍 안 하는 건물”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내 상식이 뒤집히는 느낌이었다. 관련 뉴스 기사와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자료를 하나씩 찾아 읽으면서, 평소 뉴스에서 “내진설계”라는 말은 자주 들었어도 그것이 “제진”, “면진”과 어떻게 다른지는 한 번도 구분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걸 새삼 느꼈다.

내진·제진·면진, 세 가지 접근의 출발점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운영하는 지진방재 콘텐츠 공유포털(eq.ndmi.go.kr)은 세 개념을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내진구조(耐震構造)는 건축물 자체를 강하게 만들어 지진력을 직접 견디는 방식이다. 철근콘크리트나 철골 같은 구조재의 강도와 연성을 높여, 구조물이 변형되더라도 붕괴에는 이르지 않도록 설계한다. 별도의 장치 없이 골조 자체가 저항체다.

제진구조(制振構造)는 건물 내부에 댐퍼(damper)라는 장치를 설치해 지진 에너지를 흡수·소산시키는 방식이다. 벽체나 골조 접합부에 오일댐퍼, 강재 이력댐퍼, 동조질량감쇠기(TMD) 등을 배치해 진동이 발생하면 그 에너지를 열이나 마찰로 바꿔 소모한다. 구조체가 감당해야 할 변형량 자체를 줄여준다.

면진구조(免震構造)는 기초와 상부 구조 사이에 면진장치를 넣어 지반의 흔들림이 건물에 전달되는 것 자체를 차단하는 방식이다. 국토교통부 건축구조기준 KDS 41 17 00에 따르면 면진장치는 수직방향으로는 강성이 크지만 수평방향으로는 유연하게 거동하도록 설계되어, 건물의 고유주기를 인위적으로 길게 늘림으로써 구조물에 전달되는 지진 에너지 자체를 줄인다. 지진의 주요 에너지가 담긴 진동수 대역과 건물의 고유진동수를 어긋나게 만드는 원리다.

처음엔 나도 이 세 단어가 그냥 표현만 다른 비슷한 개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실제로 찾아보니 “어디서 에너지를 처리하느냐”가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골조가 직접 버티느냐, 댐퍼가 중간에서 흡수하느냐, 아예 기초에서 차단하느냐 — 이 세 가지가 전혀 다른 층위의 해법이라는 걸 이해하고 나니 이후 나오는 내용들이 훨씬 명확하게 읽혔다.

지진파가 건물에 들어온 뒤, 세 방식은 어떻게 갈라지는가

지진 에너지가 지반을 타고 건물에 도달하는 과정을 단계별로 추적하면 세 방식의 차이가 분명해진다.

① 지진파 발생 → 지반을 통해 건물 기초에 도달
       │
       ├─ 내진: 진동이 그대로 상부구조로 전달됨
       │        → 골조·벽체가 직접 저항, 부재 내부에서 변형·미세균열로 에너지 소산
       │        → 강도와 연성으로 붕괴만 방지, 흔들림 자체는 크게 줄지 않음
       │
       ├─ 제진: 진동이 상부구조로 전달됨
       │        → 댐퍼가 특정 층·구간에서 진동에너지를 흡수(마찰열·유체저항 등으로 변환)
       │        → 층간변위와 최상층 가속도가 줄어듦
       │
       └─ 면진: 기초-상부구조 사이 면진층에서 진동 대부분이 걸러짐
                → 상부구조에는 저주파의 완만한 진동만 전달
                → 건물 내부 사람·설비가 느끼는 흔들림이 가장 작음

즉 내진은 “버티기”, 제진은 “흡수하며 버티기”, 면진은 “애초에 덜 받기”에 가깝다. 세 방식은 배타적이지 않으며 실제로는 결합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수치로 보는 차이

롯데월드타워는 규모 9.0의 지진과 초속 80m의 강풍에도 견디도록 설계되었으며, 이런 조건에서 최상층부는 좌우로 2m에서 6m까지 흔들릴 수 있다. 이 건물은 코어월과 8개의 메가칼럼이 수직 하중을 받치고, 39~44층의 아웃리거, 104~107층의 벨트트러스, 72~76층의 아웃리거·벨트트러스 병용 구간이 횡력에 저항하는 내진 골조를 이룬다. 여기에 꼭대기 층에는 맴돌이 전류(eddy-current) 방식의 동조질량감쇠기(TMD)를 포함한 제진 장치가 설치되어 바람과 지진에 의한 진동을 감쇠시킨다. 즉 이 건물은 내진(골조 강성)과 제진(TMD·댐퍼)을 함께 쓰는 복합 시스템이며, 완전한 면진 구조는 아니다. 흔들림을 0으로 만드는 대신, 흔들리되 사람이 견딜 수 있고 구조체가 손상되지 않는 범위로 관리하는 것이 설계 목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새롭게 안 사실은, 롯데월드타워가 면진이 아니라 내진과 제진을 결합한 구조라는 점이었다. 이름값 때문인지 막연히 “최첨단 기술이 다 들어갔으니 당연히 면진 구조겠지”라고 짐작했는데, 실제로는 골조 자체의 강성과 꼭대기 층의 TMD 조합으로 흔들림을 관리하는 방식이었다. 최상층부가 2~6m나 움직인다는 수치를 처음 봤을 때는 꽤 놀랐는데, 그게 오히려 안전을 위해 의도된 여유라는 걸 알고 나니 숫자가 다르게 보였다. 만약 이 건물에 실제로 올라가 있을 때 그 정도로 흔들린다면 순간적으로는 무섭게 느껴질 것 같은데, 그 흔들림이야말로 건물이 제대로 설계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게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면진장치 자체의 원리를 수치로 보면, 대표적인 납면진받침(Lead Rubber Bearing)은 적층고무받침에 납 코어를 삽입해 복원력과 감쇠 기능을 동시에 확보한다. 고유주기를 강제로 연장함으로써 구조물에 입력되는 지진력의 크기를 줄이는 방식이며, 진자형(펜들럼) 면진받침은 마찰재를 이용해 같은 기능을 구현한다.

비교: 내진 vs 제진 vs 면진

구분 핵심 원리 장점 단점 적용 사례
내진 구조체 자체 강도·연성으로 지진력 직접 저항 구조 단순, 별도 장치·유지관리 부담 적음, 비용 상대적으로 낮음 흔들림 자체는 크게 줄지 않음, 부재 손상·거주자 불안감 발생 가능 일반 건축물 대부분(법정 최소 기준)
제진 댐퍼가 진동에너지를 흡수·소산 층간변위·가속도 저감, 기존 건물에도 보강 적용 가능 장치 유지보수 필요, 초고층 풍하중 제어와 지진 제어를 함께 설계해야 함 롯데월드타워(TMD 등 제진 장치)
면진 면진층이 지반과 상부구조를 분리, 고유주기 연장 상부구조 진동 최소화, 내부 인명·설비 보호 효과 큼 초기 비용 높음, 면진층 변위 공간 확보 필요, 초고층에는 적용 제약 병원·데이터센터 등 기능 연속성이 중요한 시설

흔한 오해: “안 흔들리는 게 무조건 좋다”

“흔들림 없는 건물”이라는 표현은 마케팅 언어로는 매력적이지만 구조공학적으로는 위험한 목표가 될 수 있다. 강성을 극단적으로 높여 흔들림을 억제하면, 지진 에너지가 빠져나갈 통로 없이 구조 부재에 응력으로 집중된다. 콘크리트나 철골이 항복점을 넘어서면 취성 파괴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서서히 변형되며 무너지는 연성 파괴보다 훨씬 위험하다. 반대로 면진·제진 구조는 의도적으로 특정 부위(면진층, 댐퍼)를 유연하게 만들어 그곳에서 에너지를 흘려보내거나 소산시킨다. 사람이 체감하는 흔들림이 있더라도, 그 흔들림이 구조체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면 그것이 더 안전한 상태다. 안전성의 기준은 “흔들리지 않는가”가 아니라 “에너지가 어디서, 어떻게 처리되는가”이다.

이 글을 쓰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내가 평소 “안전 = 견고함 = 무반응”이라고 단순하게 등치시켜 왔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건물이 흔들린다는 사실 자체를 불안 요소로만 여겼는데, 그 흔들림이 설계자가 의도적으로 열어둔 안전장치일 수 있다는 걸 알고 나니 이제는 고층 건물을 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다음에 롯데월드타워 근처를 지날 때는 예전과 다른 눈으로 한 번 더 올려다보게 될 것 같다.

핵심 정리

  • 내진은 구조체 강도로 직접 버티고, 제진은 댐퍼로 에너지를 흡수하며, 면진은 기초에서 진동 자체를 차단한다.
  • 롯데월드타워는 규모 9.0 지진과 초속 80m 강풍 조건에서 최상층부가 2~6m 흔들리도록 설계된, 내진 골조와 TMD 등 제진 장치를 결합한 복합 시스템이다.
  • KDS 41 17 00 기준상 면진장치의 핵심 작동 원리는 건물의 고유주기를 강제로 늘려 구조물에 전달되는 지진 에너지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 흔들림을 완전히 없애려는 설계는 응력 집중으로 인한 취성 파괴 위험을 높일 수 있어, 오히려 통제된 흔들림이 더 안전한 경우가 있다.
  • 세 방식은 상호 배타적이지 않으며, 실제 건물 대부분은 내진을 기본으로 하고 필요에 따라 제진 또는 면진을 결합한다.

참고자료

  •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지진방재 콘텐츠 공유포털, “내진 / 면진 / 제진” — https://eq.ndmi.go.kr/main/knowledge/knowledge_05.do
  • 국토교통부, KDS 41 17 00 건축물 내진설계기준(2022년 개정) — https://www.kim2kie.com/res/html/0_formula/00%20Dynamics/KDS%2041/KDS%2041%2017%2000.pdf
  • 국토교통부, KDS 17 10 00 내진설계 일반(2024년 개정), 건설기술정보시스템 CODIL — https://www.codil.or.kr/filebank/moct2014//202405/MOCT3204_0.PDF?nserialno=3204
  • 서울경제, “롯데월드타워, 어떤 기술 적용됐나” — https://www.sedaily.com/article/11581729
  • 뉴시스, “123층 롯데월드타워, 버틸 수 있는 지진 규모는?” — https://mobile.newsis.com/view.html?ar_id=NISX20160913_0014385080
  • 위키백과, “롯데월드타워” — https://ko.wikipedia.org/wiki/롯데월드타워